2010년 5월 24일 월요일

고령화 가족 - 천명관 지음, 문학동네



막장 드라마가 판치는 세상이다. 인기 드라마 반열에 오르려면 출생의 비밀, 불륜은 기본이다. 온 가족이 보는 가족 드라마에서 청소년에게 유해한 19금 장면도 심심찮게 나온다. 인터넷 접속만 하면 온갖 자극적인 콘텐츠가 사방에 널려있으니 ‘막장 가족’이란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이 크게 충격적이지 않은 건 신기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일단 책을 읽어보니 심상치가 않다.
평균 나이 사십구 세인 도대체 멀쩡한 데라곤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는 가족이 등장한다. 비밀이 많은 칠십 먹은 엄마. 백이십 킬로그램을 육박하는, 감옥에 들락날락하는 것이 일인 전과 5범의 싸움꾼 큰 아들. 영화 한 편 제대로 망하고 알코올중독에 빠진 둘째 아들.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워서 이혼당한 막내딸과 그녀의 예의 없는 중학생 딸.
중년에 이른 자식들이 인생에 실패한 후 연세가 지긋한 ‘엄마’의 집으로 슬금슬금 기어들어 오면서 ‘고령화 가족’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렇게 중년의 자식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데 허구한 날 하는 짓이라고는 서로 욕하고 비하하고 별거 아닌 일에도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연락도 잘 하지 않던 남매는 서로의 과거를 알게 된다. 첫째 아들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전처 사이에서 생긴 아이고 둘째 아들은 지금의 어머니와 돌아가신 아버지 사이에서 생긴 자식, 그리고 막내딸은 지금의 어머니와 전파사를 하는 다른 남자와 낳은 자식이다. 알고 보니 서로 다른 피가 섞인 제대로 콩가루 집안이다.
그런데 이렇게 피도 얼기설기 섞인 고령화 가족은 안 그런 척하면서도 서로를 꽤나 챙기며 살아왔고 살고 있다. 술집에서 자신의 청춘을 다 바쳐 가족들을 먹여 살릴 돈을 벌어온 막내딸의 사연은 독자들을 눈물짓게 하고 가출한 조카를 찾기 위해 감옥살이까지 결심하는 외삼촌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이 책에서 제일 대단한 사람은 자신의 자식, 남의 자식 구분 없이 자식들 뒷바라지하는 어머니이다. 이혼과 파산, 전과와 무능의 불명예만을 안고 돌아온 삼남매를 어머니는 아무런 조건 없이 순순히 받아주었고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 다시 끼니를 챙겨주었다.
조금 과장되기는 했지만 이 가족의 모습을 통해 지금 대다수 우리들의 현실을 조명해 볼 수 있다. 서로에게 불만이 가득한 채로, 소통하지 않는 가족들. 결국 고령화 가족도 다시 제 갈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함께 푸닥거리하기 전과 후의 이들의 모습은 다르다. 그 과정이 과격하긴 했지만 그간에 소통이 이루어졌다. 바로 이 점이 ‘고령화 가족’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지금 세상엔 행복한 척 가면을 쓴 가족들이 너무 많다. 소통의 부재로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에 치중해 화목한 척 연기하는데 급급할 뿐이다. 그러나 그들을 정말 완벽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가? 표현방식이 우직하고 볼품없어도 상관없다. 서로가 소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족회의나 다 같이 모여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간단한 대화라도 좋다. ‘소통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가족 간 소통의 부재는 가족 구성원에게 소외감을 불러일으키고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와 같이 ‘소통’과 ‘이해’는 우리 인생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먹고 살기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소통의 필요를 절감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누구하나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가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박세련 기자(hiup-sr@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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