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4일 월요일

살롱드 홍익-연극<잠 못 드는 밤은 없다>‘은퇴 이민 마을의 고독한 일상’

“괴로운 일이죠. 이 나이가 돼서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싫어했었다 깨닫는 건.”

한국,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세 나라의 정세는 매우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으며, 한 나라의 사회현상은 그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과거이자 미래이며 동시에 현재이기도 하다. 두산아트센터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같으면서도 다른, 다르면서도 같은 고민과 문제점을 연극을 통해 살펴보기 위해 연극 '인인인 시리즈'를 기획했다. 지난 4월 중국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연극 <코뿔소의 사랑>이 공연 되었으며, 현재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연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가 공연 중이다.

연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는 1990년대에 일본 현대연극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어낸 극작가 겸 연출가인 히라타 오리자의 2008년 작품이다. ‘조용한 연극’으로 알려진 그의 스타일은 관객에게 주제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데에서 벗어나 다양한 현상을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그림으로써 관객들의 지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전에 연극 <과학하는 마음>과 <도쿄 노트>가 공연된 바 있다.

연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의 탄생은 2005년으로 말레이시아에 강의 차 머물게 된 작가 히라타 오리자가 일본 대사관으로부터 ‘은퇴 이민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에서 비롯한다. 그는 이후 관련 서적들을 바탕으로 ‘은퇴 이민 마을’을 작품으로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다. 희곡 집필을 위한 준비가 마무리 됐을 무렵 그는 시모카와 유지의 책 <일본에서 내리는 젊은이들>에서 히키코모리와 소토코모리를 접하게 되고, 그 속에서 등교거부를 일삼고 자전거 세계 일주를 꿈꾸던 10대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은퇴이민, 이지메문화, 히키코모리, 소토코모리와 같은 이러한 사회 병리 현상들이 갑자기 불거진 것이 아니며, 자신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로서 그는 연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를 통해 코모리 문제를 세대가 아우르는 문제로 풀어내면서 이를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고독에 대한 동경과 그 고독을 위해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외로움으로 형상화 시키고자 했다.

작품에 드러나는 은퇴이민 온 중, 장년 부부들의 생활은 편안하면서도 권태롭다. 이들은 산책, 골프, 테니스, 수영 등을 하거나 원주민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시간을 보낸다. 말레이시아에 살지만 일본인들끼리 모여 살며, 일본 음식을 먹고 일본 DVD를 보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고독이나 외로움은 단순한 사회병리 현상이 아니라 세대와 나라를 뛰어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임을 제시한다.

리조트에 사는 인물들은 누구나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사연을 갖고 있다. 겐이치(정재진)는 지병을 숨기고, 아키라(최용민)는 알코올중독자처럼 술을 마셔대고, 지즈코(서이숙)는 남편 바람기에 가슴앓이 한다. 그렇다고 이런 얘기들이 무슨 대단한 사건인 양 떠벌려지는 것도 아니다. 노을빛이 퍼지듯, 잔잔하게 일렁일 뿐이다.

소외와 고독, 외로움과 소통의 단절은 일본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기에, 한국 무대에서도 관객과의 교감이 가능하다. 더욱이 노련한 중견배우들과 예민한 젊은 배우들은 세대 간의 이해도를 사실적으로 표현해내며 극의 집중도를 높인다. 연극은 대단한 연출과 배우가 고독한 인간의 일상을 예리하게 파고들어 굵직한 여운을 남긴다. 연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는 오는 6월 6일(일)까지 두산 아트센터 Space 111에서 공연된다.

서희경 기자(
hiup-hk@mail.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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